사회 · 독점공개 · 번역

“딜리버레이션”의 의미

숙의는 논의나 토론과 무엇이 다른가, 그 사소해 보이는 차이에 대표제를 향한 더 근원적인 비판이 들어 있다.

하야카와 마코토2026. 7. 30.
도쿄의 국회의사당
일본 국회의사당. 사진 Daderot, CC0

제2장에서는 주제를 바꿔 숙의민주주의라 불리는 조류를 검토한다. 시민의 정치참여와 논의를 강조하는 숙의론은 수상공선제론과 마찬가지로 대표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민의의 다양성을 이야기에 흡수하는 공선제론과 달리, 숙의론은 다양한 민의에 발언의 기회를 부여하려 한다. 공선제와는 다른 각도에서 직접제 도입을 시도하려는 숙의의 특색과 문제점을 살펴보려 한다.

제1절 대립과 숙의

숙의의 등장

딜리버레이션Deliberation은 아마도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지는 않은 단어일텐데, 번역하면 최근 몇 년간 자주 쓰인 숙의熟議이다. 토의, 토론, 심의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특히 민주주의론 분야에서는 숙의로 사용될 때가 많다.

2010년 10월 임시국회에서 간 나오토菅直人 수상이 소신 표명 연설을 하며 결론부에 ‘숙의의 국회’를 지향한다고 말한 것을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본다.

오늘 국회가 소집되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협력하여 일본이 현재 마주한 과제를 해결하고 다음 세대에게 미루지 않는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 국민의 기대에 응답할 수 있는가, 이번 국회가 그 시금석이 됩니다. 우정개혁법안, 지구온난화 대책 기본 법안, 노동자 파견법 개정 법안 등의 심의 또한 부탁드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번 국회가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는 ‘정책의 국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논의를 더 깊이 할 수 있는 ‘숙의의 국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결론을 내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어디에 앉아 있는가가 아닙니다. 야당 여러분들에게도 진지하게 설명을 다하고, 이 나라의 장래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분들과 성실히 논의를 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합의할 수 있는 지혜를 짜내겠습니다. 국민에게 선택된 국회의원이 전력을 다해 이 나라의 정치를 쌓아 올립시다. 진정한 국민주권의 정치를 향해 함께 노력합시다.

또한 마찬가지로 민주당 정권하에서 당시 스즈키 칸鈴木貫 문부과학성 부대신을 중심으로 시도했던 ‘숙의 가케아이熟議カケアイ’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다. 문부성 정책창조엔진 숙의 가케아이 홈페이지에는 교육 정책과 관련한 숙의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숙의’란, 협력을 목표로 한 대화를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의 포인트를 만족하는 협력을 향한 일련의 프로세스를 가리킵니다.
  1. 많은 당사자(보호자, 교원, 주민 등)가 모여,
  2. 과제에 대해 학습, 숙고, 논의를 통해,
  3. 서로의 입장이나 수행해야 할 역할을 깊이 이해함과 함께,
  4. 해결책이 세련되고,
  5. 정책이 결정되거나, 개개인이 납득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교육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의 변화에 입각해 과제에 맞서 극복하기 위한 지혜와 실행력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교육 현장과 관련된 다양한 입장을 지닌 분들의 ‘숙의’에 기반한 교육정책 형성을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간 나오토의 소신표명연설에 관해 말하자면,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공약이나 매니페스토 실현 때문에 여러가지로 고민했던 배경이 있다. 하토야마 전 수상은 후텐마 기지를 현 바깥으로 이설하겠다고 말해 놓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의 교섭과정에서는 미일합의를 답습하는 발언을 하는 등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여 대립을 오히려 심화시켰다.

또한 2009년 중의원 선거의 매니페스토 중 하나였던 아동수당에 대해서는 소득 제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해 농가의 호별 소득보상과 고속도로 무료화, 유류세의 잠정세율 폐지 등을 포함해 재원 문제가 당 내외에서 큰 대립점이 되었다. 부족한 재원으로 정책을 실현하려면 처음의 정권 공약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여부를 둘러싼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숙의가 강조된 것이다.

숙의 가케아이에 대해서도 살펴보면, 교육정책의 영역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의견 대립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이념이 반영되었다고 보는 편이 좋다. 예를 들어 사전심사제에 대한 민주당 내의 노선 대립은 숙의 가케아이의 시도와 연동된다.

정치 주도를 내건 민주당 정권은 처음에는 정책 형성을 내각에 일원화하는 방침을 취해, 야당의 사전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내각의 직무를 부여받지 않은 의원에게 내각으로의 일원화는 법안에 관여하는 기회를 잃는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 숙의 가케아이를 촉진한 스즈키 칸과 센고쿠 요시토, 코지 마쓰이 등은 국회에서의 야당 의원 질문과 심의를 통해 법안 수정을 가능하게 하는 ‘숙의민주주의’를 구상했다고 한다(사사키 다케시・시미즈 마사토 편저, 『세미나 현대일본정치』, 일본경제신문출판사, 2012, 134쪽).

숙의와 의회

제1장에서는 의회제에 대한 불신을 배경으로 수상공선제가 기대를 받은 양상을 검토했다. 숙의 또한 공선제와는 다른 방향이나 의회제 불신에 대응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기존 의회제에서는 각종의 이익과 의견을 대변하는 대표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각자의 이해를 추구했으며,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지 조정할 뿐인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이익을 분배할 자원이 고갈되거나, 가치관의 대립이 격화되거나, 전세계적인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정당 간의 대립이나 정당 내의 파벌 대립이 표면에 드러나면서 정치는 정체되었다.

수상공선제는 의회 선거와는 별개로 선출된 표현형 리더의 강력한 지도력에 의거해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리더의 지도력을 중시하는 해결방법에 비해, 숙의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한 특정한 대립 그 자체에 작용한다.

수상공선제가 민의를 표현한다고 해도, 모든 민의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의견과 이해의 다양성 때문에 민의 속에 있는 대립을 리더십으로서만 해결하는 것은 무리다. 다른 한편 숙의에서는 대립하는 이해와 의견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다. 그리하여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대립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대표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숙의는 수상공선제보다도 래디컬한, 즉 근원적인 비판이다. 수상공선제는 대표제론의 틀 안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숙의를 이론적으로 파고들어 생각해 보면 전원이 참여하는 논의 즉 본래적 의미의 직접민주제를 지향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숙의의 국회’를 추구한다면 주어진 과제는 의회 안에서의 숙의에 한정된다. 그러나 애당초 국회 안에서 숙의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재원을 포함해서 이후의 정책 과제에 관한 대립이 격화되었기 때문인데, 그 대립은 의원 뿐만이 아니라 유권자 전체에 걸쳐 있다. 숙의 가케아이에서 보호자, 교원, 지역주민 등 많은 참여가 기대되는 것 또한 관계된 사람들이 가능한 한 많이 모여 논의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숙의는 논의나 토론과는 어떻게 다를까? 논의나 토론과 같은 의미인데 좀 더 진지하다고 보면 되는 걸까? 이 장의 제목에 일부러 딜리버레이션이라고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래어의 의미(일본이 아닌 정치체제에서 이 단어가 사용될 때 사람들이 느끼는 뉘앙스)와 일본어에서의 의미 사이에 논의의 본질에 관련된 중대한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치이론 연구자의 시선으로 볼 때 딜리버레이션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대화 이상의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 일본어에서도 일부러 논의나 토론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숙의라고 할 때에는 거기에 간과해서는 안 될 의도가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그 차이를 살펴보는 것으로 숙의와 대표제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 글은 『대표민주주의 가이드』 제2장에 실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