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서평

지의 관객 되기

모두가 창작자가 되고 싶어 하는 시대에, 관객으로 남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송찬2026. 9. 20.읽기 약 4분

앨트리아 극장의 객석에 앉아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관객들과 무대
공연을 기다리는 앨트리아 극장의 관객들, 2022. 사진: Packer1028 / Wikimedia Commons, CC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ltria_Theater_interior.jpg

뭔가 팔려면 스레드에 가라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 혹시 책도 팔 수 있을까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출판사 계정으로 출판 관련 글들을 읽다 보니 당연하게도 알고리즘이 나를 출판 이야기로 데려다 놓았다. 많고 많은 작은 출판사들이 모여서 와글대고 있고(모두 힘내세요!), 텍스트힙인가 뭔가 때문인지 많은 독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독자보다 많아 보이는 저자들이 있었다.

출판계에는 이제는 오래된 농담이 하나 있다. 쓰려는 사람이 읽는 사람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이상한 현상이다. 창작자를 동경하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아이돌 팬 중에는 아이돌이 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전시를 보고 미술가나 미술 평론가가 되고싶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비율로, 독자들은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한다. 심지어 좋은 독자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들 조차도 그렇다.

아즈마 히로키는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 중 한 명이다. 20대에 데리다론을 엮은 그의 첫 저서《존재론적, 우편적》으로 산토리 학예상을 받았고, 이후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 왔다. 2013년, 그는 와세다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나와 출판사 겸 문화 사업체 겐론을 설립하고 대표 겸 편집장이 되었다. 이 책 《지의 관객 만들기》는 겐론의 10년을 돌아보며 그가 추구한 것과 해낸 것, 그리고 많은 바보같은 실패담들이 담겨 있다.

관객은 이 책의 중요한 개념이다. 아즈마는 관객은 공동체의 일원은 아니지만 줄곧 지켜봐주면서도 창작자와 긴장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두 주체의 연결 고리는 창작자가 제공하는 상품과 관객에게 주는 돈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관객은 패배자가 아닌 무대의 주요한 요소이며, 관객 역시 창작자와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는 요소라고 말한다.

커뮤니티에는 다른 효용도 있습니다. 겐론스쿨에 오는 많은 사람이 프로가 되고 싶어 한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프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 콘텐츠 제작자가 되는 길뿐만 아니라 ‘관객’이 되는 길을 준비하는 게 (...) 프로가 되지 못한다면 작품을 감상하고 제작자를 응원하는 ‘관객’이 돼도 좋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관객이 된다면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 모든 문화가 관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양질의 관객 없이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 비유적으로 말해, 무대에서 춤추는 사람만 문화를 만드는 게 아니죠. 무대 아래, 즉 객석에서 춤을 보는 사람도 하나가 되어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객석에 계속 앉아 있는 사람을 키워 나가는 것도 교육이 할 큰일입니다. (111쪽)

아즈마 히로키는 왜 관객에 매달리는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이름을 알린 철학자는 관객이 아닌 신자를 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체제적인 태도를 갖추려 하고, 그것의 시작은 무엇보다 반스케일이라고 말한다.

돈은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는 한 편리한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화폐를 매개로 한 상품 교환 자체는 아무도 불행하게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본의 축적’입니다. (...) 지금은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반자본주의나 반체제도 스케일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 지금 시대에 정말로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체제적이려면 무엇보다 ‘반스케일’이어여만 하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저는 겐론을 ‘작은 회사’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체제적이고, 대안적인 미래를 연다고 믿고 있습니다.(215 - 216쪽)

지금 미디어는 공짜로 콘텐츠를 뿌리고, 사람을 모아서 그 트래픽을 광고주에게 파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이 때 돈을 내는 광고주와 미디어만이 주체가 되며, 콘텐츠 소비자는 거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모델은 필연적으로 스케일을 요구하는데, 그 방법은 더 자극적으로, 더 많이, 더 빠르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를 거부한다. 겐론은 처음부터 창작자와 관객이 함께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다(213쪽). 그렇다면 광고주에게 팔 규모가 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게 된다. 곧 스케일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즈마 히로키의 이와 같은 주장을 조금은 의심하게 된다. 아즈마는 자본의 축적이 문제일 뿐, 관객과 창작자의 돈을 매개로 한 관계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관객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값을 치를 만한 상품을 계속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광고의 스케일 압박에서는 벗어나지만 그 자리에는 관객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 압박을 견디며 작게 남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이미 큰 힘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할 것이다.

아즈마는 객석이 위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무대에서 시작했고, 온전히 관객의 입장에 있어본 사람은 아니다. 나 역시 창작자와 관객(또는 신자/안티) 사이에 있는 편집자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오히려 객석이 어떤 자리인지 더 궁금하다. 그러니 나는 관객이 되어 그 자리가 정말 만족스러운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만약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때 나는 아마 그 자리를 더 낫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관객으로 남겠다면서 결국 무대를 기웃거리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아무도 객석에 남지 않으려는 그 마음의 정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