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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아더 마인즈』 후기
2016년에는 판단을 미뤄야 했던 것들이 있다. 문어가 통증을 느끼는가, 곤충은 어떤가. 그 사이 여러 연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했고, 저자가 십 년 가까이 드나든 호주의 문어 군집 옥토폴리스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조용해졌다. 개정판에 부친 한국 독자를 위한 후기.
“딜리버레이션”의 의미
숙의는 논의나 토론과 같은 말인데 조금 더 진지한 것일 뿐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수상공선제가 강한 리더 한 사람으로 교착을 뚫으려 했다면, 숙의는 대립 그 자체에 손을 댄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끝까지 밀고 가면 전원이 참여하는 논의, 곧 직접민주제를 향한다.
그림 속의 그림 ― 호기심의 방에서 갤러리 회화로
17세기 안트베르펜에서 그림을 그린 그림이라는 장르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수집가의 방을 담았고, 나중에는 점점 공개되어 가는 소장품을 기록했다. 그 화면 안에서 미술관이 태어나고 관람객이 불어나는 과정이 보인다. 발터 벤야민이 백 년 뒤에 던질 질문이 이미 그 안에 있었다.
사이버네틱 주의력 ― 우리가 지켜보는 법을 배운 기계들이 우리를 굽어본다
화성에서 온 인류학자라면 우리의 불평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루 종일 작은 유리판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주의력이 어떻게 문제라는 말인가. 20세기 초 미군은 조종사의 집중력을 재려고 ‘추적 검사’라는 장치를 만들었고, 그 계보는 광고와 시선 추적을 거쳐 오늘의 주의력 경제로 이어진다. 그러나 읽기도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이고, 사랑도 그렇다.
#가속하라 ― 가속주의 정치를 위한 선언
2013년에 나온 이 선언은 좌파의 무력함을 정면으로 겨눈다. 지역주의와 직접행동, 수평성에 머무는 ‘포크 정치’로는 비지역적이고 추상적이며 일상의 기반시설 깊숙이 뿌리내린 적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풀어놓은 기술적 역량을 부수는 대신 목적을 바꿔 쓰자는 주장으로, 이후 십여 년간 가속주의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