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 독점공개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지구의 모든 해변을 덮은 모래알을 다 세어도 우주의 별에는 열 배 모자란다.

박초월2026. 7. 30.
햇빛의 띠 가운데 점 하나로 보이는 지구
보이저 1호가 40억 마일 밖에서 찍은 지구. 2020년 재처리판. NASA/JPL-Caltech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궁금했던 적 있으신가요? 빛 공해로 잘 보이지 않지만 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을 떠올리기만 해도 우주가 매우 큰 건 분명합니다.

잠시 해변가에 있다고 상상해 볼까요? 머리 위에서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멀리서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래를 한 줌 집어 들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알갱이를 느껴 보지요. 이때 손안에 든 모래 알갱이의 수는 얼마나 될까요? 너무나 큰 수일 터라 곧바로 대답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시야를 더 넓혀 봅시다. 지구의 모든 해변을 뒤덮은 모래 알갱이는 얼마나 많을까요? 겨우 손안에 든 모래가 몇 알일지도 말하기 힘든데 모든 해변의 모래라뇨? 그래도 영겁의 세월이 주어졌다고 치고 해변가의 모래를 하나씩 세어 봅시다.

자, 세어 보셨나요? 이제 여러분은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수를 알게 되셨습니다. 모래의 수는 10해(1 뒤에 0이 무려 스물한 개나 붙은 수입니다) 알로, 우주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별은 그 10배인 100해 개입니다. 이토록 많은 별을 담고 있는 우주가 얼마나 넓어야 할지, 짐작이 되시나요?

칼 세이건이 첫 번째 장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달하려는 것 또한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에 대한 감각입니다. 다만 세이건은 모래 알갱이 대신 '상상의 우주선'을 통해 우리를 우주로 안내합니다. 『코스모스』는 동명의 다큐멘터리 대본을 바탕으로 쓰인 책입니다. 다큐멘터리 제1화를 보면 상상의 우주선에 탑승한 세이건이 거대한 은하단에서 출발해 작디작은 지구까지 우주를 항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1980년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는 유튜브나 온라인 디지털 도서관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상상의 우주선은 2014년에 리메이크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시공간 오디세이』에도 도입되었습니다.

책도 똑같은 방식을 따릅니다. 여러분의 상상력을 힘껏 발휘할 때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향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낯선 용어가 쏟아져도 걱정하지 마세요. 용어의 정확한 의미보다는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그 느낌에 집중해 봅시다. 자, 세이건을 따라 상상의 우주선에 탑승할 준비가 되셨나요?

상상의 우주선을 타고: 은하들의 세상에서 창백한 푸른 점까지

우주여행은 지구에서 80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시작됩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이동하는 거리를 말합니다. 대략 10조 킬로미터쯤 되지요. 벌써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실감이 나지 않나요? 이곳은 별이 '억' 단위로 뭉친 집단, 은하의 세상입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은하도 작은 점처럼 보입니다. 별들이 한데 모여 은하를 이루듯, 은하들도 은하단을 이룹니다. 은하단에는 수백에서 수천 개의 은하가 포함되어 있지요. 세이건은 은하단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거시적인 구조라고 말하지만,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은하단보다 훨씬 큰 구조인 초은하단과 은하 필라멘트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은하수 은하)는 어디 있을까요? 우리 은하는 은하단보다 작은 단위인 은하군(은하들이 수십 개 단위로 뭉친 집단), 그중에서도 국부 은하군에 속해 있습니다. 한 번쯤 들어 보셨을 안드로메다은하도 같은 은하군 안에 살고 있지요. 지구에서 200만 광년쯤 떨어진 곳에 도달하면 그제야 안드로메다은하가 커다랗게 보이고, 우리 은하가 나선 팔을 돌리는 모습도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상상의 우주선은 이제 우리 은하 안으로 진입합니다. 4만 광년 떨어진 곳까지 온 우리는 우리 은하를 유유히 유영하며 별들의 세계를 조망합니다. 별들이 수백에서 수백만 단위로 뭉쳐 함께 움직이는 성단, 고작해야 두 별이 서로를 도는 쌍성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푸른 별과 머지않아 삶을 마감할 붉은 별이 우리 곁을 스칩니다. 낯선 이름이 쏟아진다고 해도 당황하지 마세요. 지금은 우주의 광막함을 느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별의 다양한 종류와 삶과 죽음은 제9장에서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태양계로 향할 차례입니다.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나선 팔 변두리에 있습니다. 이제 막 태양계로 들어온 우주선의 위치는 지구에서 1광년 떨어진 곳, 훗날 태양계 안쪽까지 파고들어 혜성으로 나타날 얼음덩어리 집단 속입니다. 이제 해왕성부터 천왕성, 토성, 목성, 화성까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을 하나씩 지나치다 보면 창백한 푸른 점, 지구가 눈앞에 동그랗게 떠오릅니다. 어둑한 공간 속에서 수억 광년을 헤매고 나서야 마침내 우리의 우주적 위치를 확인하게 된 겁니다.

우주적 관점

상상의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을 누빈 경험, 어떠셨나요? 세이건의 안내 덕분에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동시에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는 얼마나 작은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주적 규모로 관점을 넓혀 우리의 위치를 확인해 보자는 것이 『코스모스』 첫 번째 장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과학책 독서 모임 자리에서 『코스모스』 첫 번째 장을 함께 읽고 구성원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우주의 광막함과 우리의 미미함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느껴지냐고요. 답변은 저마다 달랐지만 몇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외감, 사소함, 겸허함, 해방감, 허무함. 압도적인 규모에 경외하다 보면 스스로의 존재와 고민이 사소하게 느껴지면서 겸허해진다는 분이 많았습니다. 한편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는 분도 있었고,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며 허무의 늪에 빠진 분도 있었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우주의 광막함에 대한 인식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우주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위치를 가늠하는 지혜와 통찰을 "우주적 관점"이라고 불렀습니다. 막대한 크기의 우주를 떠올리면 세상의 중심이 지구, 더 나아가 인류와 나 자신이 아님을 알게 되고 인종, 민족, 종교, 국가, 문화 간의 갈등을 넘어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 타이슨의 생각입니다. 『코스모스』를 통틀어 일관되게 흐르는 세이건의 믿음이기도 하지요. 우리가 드넓은 우주에서 별것 아닌 존재라는 인식은 비좁고 편협한 시야에서 벗어나 인류 중심주의 또는 우리 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세이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은하는 자연이 오랜 세월 조탁하여 만들어 낸 예술품입니다. 하지만 삶의 태도라는 예술품을 조탁하는 건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우주의 거대함과 지구의 초라함을 앞에 두고 어떤 삶의 태도를 조탁해야 할지, 한번쯤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대항해시대와 대우주시대

우주여행을 마친 세이건은 돌연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이집트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향합니다. 이제 막 지구에 도착한 건 맞지만, 너무 뜬금없지 않나요? 이렇게 갑자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학적 논의를 인류의 역사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 『코스모스』의 특징입니다. 세이건의 역사적 평가를 고찰하는 것은 『코스모스』를 읽는 또 다른 재미지요.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 에라토스테네스라는 수학자 겸 지리학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듯, 에라토스테네스는 두 도시에 꽂힌 막대기가 똑같은 시각에 한쪽에만 그림자를 드리우는 현상을 관찰해서 지구의 둘레를 꽤 정확히 알아냈습니다. 세이건에 따르면 에라토스테네스 덕분에 지구의 크기를 알게 된 용감한 선원들이 본격적으로 대양을 항해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대항해는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 정점에 도달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세이건의 손에서 우주 탐사와 연결된다는 겁니다. 전인미답의 장소가 더는 남지 않은 현대의 인류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대항해시대 정신을 넘겨받아 우주로 눈을 돌린 결과 대우주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 세이건의 서사입니다.

『코스모스』는 우주 탐사가 본격화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쓰인 책입니다. 1957년 소련에서 발사한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후로 미소 양국은 1960년대 초부터 앞다투어 금성과 화성을 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1977년 미국에서 쏘아 올린 보이저 탐사선이 목성을 지나 토성을 향해 한참 나아갈 무렵 『코스모스』의 출간 작업이 마무리되고 있었지요. 세이건의 눈에는 이제 막 시작된 우주 탐사 시대가 대항해시대와 겹쳐 보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콜럼버스의 항해가 새로운 발견을 상징하는 것을 고려하면 세이건이 대항해시대를 떠올린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우주는 누구의 것인가?: 우주 식민지 서사

대항해시대와 우주 탐사를 관련짓는 사람이 세이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오늘날도 "우주개발의 대항해시대" "제2의 대항해시대" 같은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류의 우주 진출을 곧바로 대항해시대 역사와 연결해도 괜찮을지 묻고 싶습니다. 새로운 대륙을 찾는 용감한 선원들의 모험 이면에 어떤 어두운 현실이 있었지요? 아메리카 대륙이 불과 몇십 년 사이에 거대한 노예 식민지이자 광산 식민지로 변모한 것을, 유럽의 전염병과 참혹한 전쟁, 학대 때문에 아메리카 선주민이 끔찍하게 몰살당한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항해시대는 단순히 비유일 뿐 사람들이 우주 탐사를 식민지화 관점에서 본다고 우려하는 건 지레짐작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주 식민지화라는 이미지는 우주 탐사에 강력하게 달라붙어 있습니다. 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는 "나는 화성을 식민지화할 것이다"라고 선언했고, 아마존의 CEO이자 민간 우주 기업 블루오리진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 또한 미래의 인류가 거대한 우주 식민지에서 살게 되리라 내다보았습니다. 심지어 NASA의 국장이었던 마이클 그리핀 역시 인간이 태양계를 식민지화하고 언젠가는 그 너머로 나아가리라 믿는다고 말했지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식민지화의 포부를 밝히는 우주 산업 거물들이 좀처럼 윤리적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과학기술학자 케이트 크로퍼드가 지적하듯 그들의 미래상에는 석유·가스 채굴을 최소화하거나, 자원 소비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자신들을 부자로 만든 노동 착취 관행을 완화하는 것조차 들어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광물 채굴과 경제 성장을 태양계로 확장하려는 야심만 있을 뿐이지요. 다른 행성에 존재할지 모를 생명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 또한 그 어떤 계획에도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식민지라는 단어는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떠다니지 않고 실제 행위에 달라붙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자 루시앤 월코위츠의 말처럼, 식민지화 같은 단어는 우리의 미래를 틀에 가두는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를 편집합니다. 미래의 우주 탐사 목적이 오로지 개척과 정복으로만 쪼그라들 뿐 아니라, 극소수의 특권층(특히 부유한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낭만적인 우주 모험 서사가 다시금 과거의 아메리카 식민지화 역사에 투영된다는 겁니다. 이처럼 좁은 인식 공간에는 다른 서사가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우주가 극소수의 소유물이 되는 걸 내버려 둬야 할까요? 앞으로 우주에서 발견할 새로움이 공동의 이익으로 돌아가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요? 혹시나 외계 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된다면 그들의 삶까지 고려하는 사려 깊은 계획을 미리 세워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의 머나먼 후손은 오늘날의 우주 탐사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